일상/유신의 마음공부

바람의 말 ... 마종기

유신약사 2015. 10. 15. 17:00

 

 

바람의 말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영화 '에베레스트'를 보았습니다.

알프스 트레킹을 다녀온 후 부쩍 산에 관심이 생겨

추석에 개봉하는 걸 바로 잡아서 봤지요.

그 지루하고도 고통스러운 길을 왜 가는 지 모르겠다며

영화를 보는 내내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높고도 아찔한 다리 손잡이에서 바람에 어지러이 펄럭이던 오방색 천조각들..

룽다.. 혹은 타르초라고 한다는 그 천에는 경전이 적혀있다고 합니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무사하라는 기원이 담겨있겠지요.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도 여기저기 매달려서 하늘을 수놓던 색색의 천조각..

빙하와 바위로 덮여서 무채색 일색이던 그곳에

인간의 흔적을 필사적으로 남기려 한다는 느낌..

 

며칠 전 히말라야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그러더군요.

그 천조각에 적힌 경전의 귀절은 바람이 사람 대신 읽어서

세상 곳곳에 축복을 전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아 참 아름답고 따뜻하고 간절한 기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 구석구석 닿지 않는 곳이 없는 바람이

신의 축복을 담아 어루만지고 다니리라...

 

이 시를 읽으니 문득

그... 바람에 나부끼던...

어쩌면 우리네 성황당을 칭칭 감고 있던 것 같기도 한

색색의 천조각의 춤이 생각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