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트래킹/캐나다트래킹

캐나다 서부 록키트래킹과 동부 단풍트래킹 ... 12. 이제 집으로 (에필로그)

유신약사 2022. 11. 12. 12:32

여행 열하루째 ... 2022년 10월 5일 수요일
여행일정 ... 토론토 국제 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기나긴 14시간의 비행

가을빛으로 물들어가는 록키



빛 때문이었어요.
꽃이 피고, 신록이 눈부시고, 단풍이 불타는 조화가 결국은 모두 빛이 만든 작품이었지요.
빛이 아니라면 시간이 지나가지도, 계절이 돌고 돌아 나이를 먹지도, 비가 오지도, 파도가 치지도 않을 일이었겠지요?
태양이 뿜어주는 그 ‘빛’으로 인해 꽃이 피고, 신록이 빛나고, 단풍이 불타는 것을...
그 빛이 없다면 눈으로 보이지도 않을 것이고, 이 아름답고 대단한 풍경들이 좋은 줄도 몰랐겠구나..
눈부신 가을빛 속을 걸으며 내내 이 빛과 내 육신의 건강함에 계속 감사했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일은 시간과 경제적인 여유가 정말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은 실행하는 '용기'입니다.
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떠나서 겪어보는 사람이 훨씬 적은 이유가
용기를 내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어쩌면 큰 용기를 낼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홀로 약국'을 운영한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시간과 노력과 관심을 온전히 약국에 쏟아 붓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하루 12시간, 주 6일 근무를 하고, 근무중에 식사와 화장실 가는 시간의 자유도 없습니다.
입안에 음식물이 들어가는 순간, 환자응대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곤 하지요.
이러다 보면 필연적으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몸과 마음의 균형이 무너집니다.
이렇게 상처받은 나를 어떤식으로 다시 고쳐서 삶을 살아갈 것인지 잘 생각해 봐야합니다.

실제로, 어느 순간 저의 마음은 많이 우울해졌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혔고, 자꾸만 비교속에서 저 자신을 작고 볼품없게만 만들어가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제게 찾아온 터닝포인트가 이 트래킹 여행이었습니다.
정말, 눈 딱 감고 저질렀지요.
엄마와 함께 떠난 뚜르드 몽블랑 트래킹을 시작으로 해마다 계속된 트래킹 여행에서 이제 저는 제 마음과 몸을 추스르고 있습니다.


올해 떠났던 열하루의 이 캐나다 단풍트래킹은 3년만에 다시 찾아온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북아메리카 대륙과 태평양이 만나는 곳에 등뼈처럼 솟아 있는 록키산맥의 울끈불끈한 산세 속에 보석처럼 숨어있는 작은 도시 밴프(Banff)와 재스퍼(Jasper)를 잇는 39번 국도를 따라 꿈처럼 아름다운 드라이브를 하고, 노랗게 반짝이는 낙엽송과 활엽수들이 반겨주는 길 사이를 걸어서, 파랗게 시린 호수를 바라보기 위해, 야생 블루베리가 보라색 구슬처럼 깔려있는 산마루를 천천히 걸어 올라갔습니다.
산꼭대기 어느 점을 목표로 삼고 올라가기는 하지만, 절대로, 목표만을 바라보고 헐떡이며 땀을 훔치고, 무릎관절을 갈아 바치는, 진격의 등산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충분히 하늘을 즐기고, 산을 바라보고, 나무를 안아보고, 꽃 따라 웃어가며, 열매들을 만져보며 걷는 길이였지요.
옆 사람과 도란도란 끊임없이 피워 올리는 이야기꽃이 뭉게뭉게 구름처럼 날아올라 하늘에 닿는 바람이 되기도 하고 기도가 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해발 2000미터가 넘는 곳에 펼쳐졌던 노란 라치밸리의 풍경도,
800미터 산위에서 내려다 본 발아래의 동글동글 산과 호수의 발그레한 단풍들도 모두 저마다 아름답고 빛났습니다.
자연에서는 그 나름의 아름다움과 의미는 모두 소중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습니다.



세인트 로렌스 강이 흐르는 퀘벡시티의 고색창연한 성과 아기자기한 유럽스타일의 골목길 산책을 하면서 자연과 어우러진 사람들의 문화도 참 아름답구나 느꼈구요.
작은 섬이 1864개나 있다는 천섬 지역 유람선 관광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여정으로 이틀을 즐긴 나이아가라 지역의 웅장한 폭포와 그 주변의 따뜻하고 풍요로운 느낌도, 지평선으로 해가 뜨고 지던, 우리로선 생경한 장면도 참 인상적이있습니다.




트래킹 여행을 다니면 힘이 들 텐데 왜 편안한 여행을 마다하고 그렇게 오래 걷는 여행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처음 트래킹 여행에 참여했을 때 너무 힘들어서 깜짝 놀라고, 근육통으로 고생도 하긴 했지만, 근육통은 이틀도 지나지 않아 다 사라졌습니다.
이후에는 허리와 다리에 균형이 생기고, 마음에 자신감이 생기고, 머리는 맑아져서,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훨씬 더 밝아지고 건강해졌습니다.
그 경험 이후에 이제 저는 오래 걷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고, 걷는 일을 통해 마음을 정화하고 건강을 챙기는 것이 얼마나 현명한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구의 깊은 속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에 더욱 관심이 생겼습니다.




물론 아직은 여행 전문가도 아니고 그저 여행사에서 짜 주는 일정따라 깨작깨작 움직이는 초보 트래커 입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이 트래킹 여행을 통해 영혼과 육체의 발전을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예요.
특히, 같은 애환을 느끼는 약사님들과 동행해서 자연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그 순간 순간이 더욱 끈끈하고 든든한 추억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번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약국 판매대 앞에 서 있는 저에게 사람들은 말합니다.
“약사님 뭔가 예전보다 좋아보여요.”
자연 속에서 웃고, 걷고, 해방되었다 왔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이번 단풍국 여행에서도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끼고, 마음 가득 담아왔으니 이 행복한 기운을 약국에 오시는 손님들과 주변 분들에게 듬뿍 나누어 드리렵니다.




내년에도 트래킹 계속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