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날짜 ... 2024년 6월 7일 금요일
여행 일정 ... 팔라스데레이를 출발하여 예쁜 카페에서 잠깐 쉬었다가
멜리데의 명물 뿔뽀 요리로 점심을 먹고 아르수아를 향하여 가는데 까지 가 봅니다.
오늘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성지순례길로 각광받게 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산티아고 성인이 순교하시고 세월이 흘러 4세기 경에 기독교는 스페인에서 종교적인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베리아 반도는 35,000년 전 신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했던 흔적이 산재해있는 지역으로, 기원전 9세기 경에는 켈트족이 이주해 들어왔고, 기원전 200년경부터는 로마인들이 이곳을 점령했습니다.
그러다가, 5세기경에는 서고트족이 침입해 와 지배권을 획득했고,
8세기 경에는 북아프리카에서 들어온 이슬람 교도들이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을 점령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포르투갈, 아라곤, 카스티야 같은 기독교 나라들이 세력을 확장하여 이슬람세력을 물리치는 과정이 있었는데 이런 시기를 레콘키스타라고 합니다.
1479년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의 결혼으로 스페인은 통합되었고,
1492년 이베리아 반도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이슬람 왕국 그라나다가 함락되면서 '레콘키스타'는 완성됩니다.
9세기에 산티아고의 유해가 발견되고 교회를 지어 그를 기리면서 교회를 중심으로 도시가 생겨나고 번성했지만
얼마 후 노르딕 해적들이 침입해와 도시가 파괴되면서 위기가 찾아왔고, 997년에는 이슬람세력으로 부터 심각한 공격을 받게 됩니다.
산티아고 성인의 유해를 보존하는데 위협을 느낀 국왕은 유해를 콤포스텔라 성채로 옮겨왔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산티아고 성인을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레콘키스타의 정신적 지주로 삼아 이슬람세력으로 부터 스페인땅을 수복하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시작됩니다.
1078년 레온과 카스티아의 국왕 알폰소 6세는 대성당을 지으라 명했고, 마요르 광장의 동쪽 끝에 1128년에 봉헌하여 1211년에 완공된 지금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 건축되었습니다.
교황 알렉산더 3세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순례지로 선포하여 예루살렘과 로마와 함께 기독교의 3대 성지가 되었고,
매년 그 순례객이 늘어 중세에는 매년 50만명이 넘는 순례자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산티아고는 망토를 입고, 지팡이를 짚고, 모자를 쓰고, 조가비를 들고 다녔다고 하는데,
그와 같은 복장을 한 순례자들이 유럽 각국으로 부터 그 당시 투르크의 지배하에 들어 접근이 어려웠던 예루살렘을 대신하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해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6세기 종교전쟁이 불어닥치면서 이길은 쇠퇴하였고,
스페인 국내정세도 어지러워, 순례자들이 안전하게 순례여행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이곳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방문했고,
1993년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 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지정되었습니다.
1997년 브라질의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가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오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조가비가 상징물로 된 이유는
산티아고 성인의 유해가 바다를 건너올 때 조가비가 그 유해를 덮어 보호했다는 전설도 있고,
세례를 줄 때 조가비로 물을 길어서 부어주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조가비를 들고 다니다가 물을 떠서 먹는데에 활용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무튼 노란 조가비 표식을 따라가면 순례자 길입니다. ^^
오늘 우리의 점심은 멜리데의 명물인 문어요리라는 기대되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문어는 스페인어로 뿔뽀라고 하는데,
뿔뽀와 대하구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발걸음에 힘이 납니다. ^^
로마시대의 다리가 있는 아름다운 마을의 이름은 푸렐로스입니다.
이 마을에는 작지만 유명한 성당이 하나 있습니다.
푸렐로스의 산 후안 성당인데, 이 성당에는 독특한 십자가가 있고, 그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용서의 십자가'라고 하는데요.
독특하게도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의 오른손이 십자가에서 풀려서 아래로 떨어져 있습니다.
이 마을에 어느 사람이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하러 왔습니다.
신부님은 그 사람의 고해를 성실히 듣고 그의 죄를 사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같은 죄를 속죄하러 신부님을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성실히 고해성사를 행해주시던 신부님이 화가 났습니다.
어떻게 매번 똑같은 죄를 저지르고 반성하거나 고치지 않고 이렇게 고해성사만 하러 오는가
나는 이제 그 죄를 사해주지 않겠노라... 하고 신부님이 화를 내자
갑자기 십자가에 못박혀 있던 예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그(죄를 고백하러 온 사람)를 위하여 피를 흘린 자는 그대(신부)가 아니다...
그의 죄는 내가 직접 사해 주겠다..'
하고 못박혔던 오른손을 빼어 죄인의 이마를 어루만져 주었다는 전설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다 하여도 용서를 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고,
어떤 죄를 얼마나 지었든간에 용서를 구하면 신께서는 용서를 해 주신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 성당을 나와 이제 더 뜨거워지고, 그늘은 없어진 길을 걸어서 멜리데로 갑니다.
환상적인 점심식사를 마치고 또 우리는 길을 갑니다.
오후에는 좀 더웠고, 도시의 아스팔트길이라 조금 더 지치는 느낌이었습니다.
더운 길을 걸어가는데, 꽃들이 곳곳에서 피어 향기를 뿜어냅니다.
누군가가 향로미사 보타푸메이로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 올려지는 순례자 미사에서 행해지는 멋진 행사인데,
과연 우리가 갔을 때 그 향로미사를 올릴까? 하며 약간 기대를 해 봅니다.
날씨가 흐릴 때는 맑은 날이면 좋겠다 했지만,
막상 해가 쨍한 오후가 되니 걷기가 힘이 듭니다.
아르수아까지 8킬로가 남아있지만, 우리는 이정도에서 오늘의 길을 접으려고 합니다.
역시 구름도 없이 너무 맑은 날만 계속되는 것은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루고로 돌아가 씻고 좀 쉬어야 되겠습니다.
내일은 보타푸메이로에 대해 설명해 드릴게요~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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