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열흘째... 2018년 7월 20일 금요일
여행 일정 ... 아쉬운 마지막 트래킹의 날 르 뚜르 에서 발므고개까지 프랑스와 스위스 접경길 걷기
가이앙 호숫가 평화로운 점심 후 산책
매일 매일 걷고 또 걷는 일이 힘들기도 했지만
오늘 아침이 되고 보니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3일 전에는 걸어서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국경을 넘어 보았다면 오늘은 걸어서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을 넘어 봅니다.
샤모니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동쪽으로 오면 르뚜르 지역에 내릴 수 있습니다.
여기는 에귀디미디 쪽 보다 훨씬 완만한 산세로 예쁜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길입니다.
그래도 산이 높은 지 해가 늦게 뜨네요.
샤모니에는 벌써 해가 떠서 도시가 밝아졌는데,
여기는 이제야 산 위로 햇님이 고개를 내밀어요.
오늘은 오후에 몇사람은 일정을 중간에 그만하고 패러글라이딩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고 일기가 별로 좋지 않을 것이라는 예보가 있어서 걱정입니다.
르뚜르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입니다.
3년전, 트래킹 여행에 처음으로 따라와서 첫 코스를 걷다가 포기했던 코스... 크으..
아쉬움이 남았던 곳이지요.
참 화창한 하늘이 오늘도 방긋 웃어 줍니다.
그런데, 바람은 좀 붑니다.
원래 이 지역이 바람이 좀 많은 곳인가봐요.
완만한 흙길을 소풍처럼 걷다가 잠시 쉬는 자리
왼편으로 하얀 머리를 한 몽블랑 산군이 보이네요.
어제 우리는 저기 꼭대기에서 어마어마한 설경을 즐겼었지요.
우리가 앉은 자리의 맞은 편은 저렇게 생겼습니다.
있다가 발므고개 산장을 들렀다가 저기 보이는 길로 내려올 예정입니다.
풀밭에 앉아 휴식을 즐기는 동안에 예쁜 꽃들이 자꾸만 손짓을 합니다.
이름도 모르면서 자꾸만 눈길을 뺏깁니다. 흔한 레드클로버인 것 같은데.. 그래도 예뻐서 ... 휴식을 끝내고 조금 걸어가니 이번에는 알핀로제 밭이 나왔습니다. 별처럼 빛나는 알핀로제들 또다른 꽃동산 르뚜르 정원을 걸어갑니다. 지난 번에 왔을 때는 안개만 가득해서 눈에 하나도 안보였던 꽃동산입니다. 길이 험하지도 않고, 날씨도 좋고... 하지만, 걸음이 느려지는 이유는... 꽃들이 손짓을 하기 때문입니다. 꽃도 산도 이제 또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일상으로 돌아가 고단한 어느 날에 이 순간이 그리워 지겠지요?
쏟아지는 햇살 속에 줄지어 흙길을 걸었던 이 순간을 생각하며 머리를 식히게 될겁니다.
걷다 말고 땅에 엎드려 꽃과 눈을 마주하며 숨을 멈추던 이 시간이 생각나기도 할테지요.
무거운 카메라 때문에 목디스크 걸리겠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열심히 메고 다니며 사진을 찍던 사람들도 떠올리며 빙긋 웃음을 지을 거예요.
배낭을 베고 드러누운 풀밭에서 올라오던 물기 머금은 흙 냄새가 그리워 지그시 눈을 감는 날도 있을 겁니다.
앞서 걷던 사람들의 아름다운 뒷모습도 내내 머릿속에 떠오를 거예요.
이런 저런 아쉬움을 생각하는 동안에 눈앞에 벌써 콜데발므 산장이 나타났습니다.
이곳은 스위스와 프랑스의 접경입니다.
스위스 쪽에서도 발므고개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콜데 발므 산장의 어두운 실내에서 마셨던 진한 커피향을 뒤로 하고 이제 우리 몇명은 패러 글라이딩을 하러 갑니다. 패러글라이딩 팀은 하늘을 날아 오를 기분 좋은 경험을 기대하며 올라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포세트 고개로 내려갑니다. 서서히 구름이 덮여오는 샤모니를 향해 우리는 리프트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샤라미용 산장... 3년전 어머니와 함께 도시락을 먹었던 곳이지요. 여기서 또 케이블카로 갈아타고 르뚜르 지역으로 내려가서 버스를 타고 브레방으로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갑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이걸 어쩌나 ...패러글라이딩이 취소가 되었습니다. 구름이 끼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안전문제로 패러글라이딩을 띄울 수가 없다고 합니다. 크흑 그래서, 우리는 가이앙 호수로 향했습니다. 샤모니로 내려오니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흐려져 버렸습니다. 이런 날은 패러글라이딩 못한다고... ㅠㅠ 뜻밖에 호숫가의 낭만을 즐기게 된 우리는 낚시하는 아저씨 옆을 괜히 어슬렁 거리기도 하고, 호수에 그려진 몽블랑을 들여다 보기도 하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우리의 패러글라이딩을 방해하고 잔뜩 흐렸던 하늘은 결국 우리가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에 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번 여행 내내 거의 내리지 않던 비가 천둥번개를 동반하여 무섭게 내리네요. 샤모니가 우리를 보내는 마음이 무척이나 서운했던가 봅니다. 스위스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자연을 경험했던 이번 여행은 참으로 오래 걸었고, 생각보다 아주 많이 힘이 들었지만, 저는 그보다 더 몇십배의 보상을 받은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버스나 기차로 접근할 수 있는 명소가 아니라 내 발로 내 힘으로 노력을 해야만 다다를 수 있는 그곳에서 얻은 댓가는 그만큼 더 값지고 감동적이었으니 말입니다. 이전에 왔던 곳을 다시 와서 돌아보니, 그 전의 추억까지 덧입혀져서 더더욱 마음에 따뜻하게 자리를 잡습니다. 매년 이 길을 다시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생겼습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귀한 내 주변 사람들과 재미있게 따뜻하게 좋은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또 이 길을 걸으러 돌아오겠습니다. 그렇게 하려고 건강을 유지하고, 부지런히 살겠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난 줄 알고 열심히 살았고, 조금 젊었을 때에는 가정을 일으키는 막중한 책임을 띠고 이땅에 태어난 줄 알고 열심히 살았고, 또 조금 나이가 들면서는 아이들을 길러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별로 행복하게 살았던것 같지 않고, 계속 걱정을 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열심히... 살게 되더라도... 행복하게 열심히 살겠습니다. 많이 웃고, 많이 걷고, 많이 노래하고, 많이 보며 살아보려 합니다. 여행의 기억을 자주 떠올리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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